와중의 한국 교수가 목숨을 걸고 호소 날조된 ‘위안부 사건' 독점수기|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한국의 명문・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수업 중에 한 발언이 큰 논란이 되고 한국에서 사회 문제로 발전!와중의 류 교수가 월간 『Hanada』에 완전 독점수기를 기고. 한국에서 보도되지 않는 발언의 진의, 정론 · 사실을 봉살하고 발언자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는 한국 사회의 이상한 실태를 고발! 한일 전 국민 필독!

일본의 독자에 첫 기고

일본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는 경험은 처음이다. 학술논문을 영어로 써서 혹은 동시통역을 통해 일본 학자들 앞에서 발표해 본 경험은 꽤 있다. 또한 일본 매체가 필자의 발언을 인용해 기사를 작성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일본 대중 매체에 이번 같이 직접 글을 쓰는 방식으로 기고하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번역을 통해서 지만.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미묘한 한일관계의 현실에서 이 글이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적 현실에서 한·미·일 동맹을 유지 및 강화하는 과제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북·중·러 동맹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남쪽을 겨누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한국의 연세대에서 1987년부터 사회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만 65세 정년퇴직을 불과 3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33년차 최고참 교수다. 강의와 연구로 평생을 이어왔고, 50세를 넘기면서부터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국가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또 그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필자는 한국의 연세대에서 1987년부터 사회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만 65세 정년퇴직을 불과 3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33년차 최고참 교수다. 강의와 연구로 평생을 이어왔고, 50세를 넘기면서부터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국가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또 그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한시적이긴 하지만 한국의 보수우파 정당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7년 5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선자에게 패배한 홍준표 후보가 같은 해 7월 대표로 선출된 ‘자유한국당’에서 그해 12월까지 ‘혁신위원장’이란 직책을 수행했다. 그러나 2018년 4월의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면서 이 일은 결국 아무런 보람도 건지지 못한 헛된 노력이 되었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고 잠시나마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했던 정치권 활동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한국 국민들의 몫이다. 반대자들은 고소하게 생각할 것이고, 지지자들은 아쉽게 생각할 터다. 자랑스러워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평가를 받기엔 스스로 생각해도 부족한 모습이 많은 사람이라는 자평도 한다.

그러나 세간(世間)에서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평가하고 나아가 스스로 그러한 평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2019년 9월 19일 연세대 강의실에서 한 발언 때문에 징계를 받은 일을 일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일본 독자들에게도 이 사건의 전말을 보고해, 한국의 일본에 대한 미묘한 정서 이른바 ‘반일종족주의’(反日種族主義)의 현실을 공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자국의 현대사를 부끄러워 하는 청소년

2019년 가을 학기 문제가 된 필자의 강의는 ‘발전사회학’이었다. 이 강의는 사회학 전공 선택 과목으로 발전을 원하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왜 어떤 국가는 성공하고 왜 또 다른 국가는 실패하는 가를 수강생들과 같이 토론하고 분석하는 강의다. 한국은 예외적으로 성공한 경우라서 당연히 한국 사람들은 그러한 조국의 현대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강의는 자연스럽게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로 이어진다.

문제가 된 주(週)의 강의 주제는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였다. 학계에서는 한편에서 그 시기를 ‘수탈’을 당한 시대라고 평가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시기라는 해석도 공존하고 있음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또한 아래의 표를 중심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가 다른 식민지 경험과 비교해 매우 독특한 상황이었음을 설명했다.

출처: 류석춘, 2002, 『한국의 사회발전: 변혁운동과 지역주의』 (전통과현대), p.58. 식민지배의 기간에 대한 판단은 문헌에 따라 또 필자에 따라 기준을 달리 설정할 수 있다.

이 표를 통해 필자는 일본의 한국지배가 다른 식민지 경험과 비교할 때 식민 모국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이 결합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식민 지배를 받은 기간이 매우 짧고, 역사문화적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그런 일을 당했고, 서양 열강과 비교하여 일본이라는 식민 모국은 산업화의 후발국이어서 조급한 심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피식민 사회와 식민 모국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 줄 제3의 집단도 없어서, 두 민족은 식민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힐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이었음을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을 더욱 더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유산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식민경험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그것을 또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이어갔다. 구체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농지, 쌀, 노동자, 여자에 관한 설명을 예로 들었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사람들이 소유한 농지의 40 % 를 일본 사람이나 일본 국가에게 약탈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잘못된 것임을 설명했다. 토지조사사업은 기존의 소유권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재확인하여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 쌀을 일본이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갔을 뿐이라는 설명도 했다. 일본에 징용 간 사람들 대부분 역시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돈 벌러 자원해 간 것임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여자들이 위안부로 나서게 된 것도 강제로 연행당한 결과가 아니라, 민간의 매춘업자에게 취업사기를 당해서였다는 설명도 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마치고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약 50명의 수강생들 가운데 5명의 학생이 나서서 총 31번의 질문이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질문이 위안부와 관련된 강의 내용에 집중되었다. 여학생A는 14번, 여학생B는 9번, 여학생C는 2번, 남학생D는 3번, 여학생E는 3번 위안부에 관한 질문을 했다. 이 가운데 학교가 ‘언어성희롱’이라고 문제 삼은 필자의 발언 ‘궁금하면 한 번 해볼래요?’는 여학생A와의 14번에 걸친 질문답변 과정에서 10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발언이 과연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인가를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여기서는 해당 여학생과 주고받은 모든 발언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 물론 이런 녹취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밝혀둘 필요가 있다. 녹취록이 없다면 어떤 교수도 자신이 강의에서 한 말을 기억에만 의존해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의를 수강한 학생 중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던 역사와 강의 내용이 너무나 다르자 교수의 허락 없이 녹음한 음성파일을 외부의 언론에 유출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강의실에서의 필자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노예’라는 주장을 하며 한일관계의 개선에 재를 뿌려 온 정의기억연대 (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줄여서 정대협)가 이 기회를 그냥 넘길 까닭이 없었다. 녹음 파일을 구해 녹취록을 만들더니 급기야는 교수가 강의실에서 한 발언이 ‘위안부’는 물론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걸어 왔다.

2016년부터 스스로를 ‘정의기억연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 단체는 1991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 단체는 일제시대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존재했던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어이없는 단체다.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고 또 진상을 규명한다는 취지로 설립한 단체이지만 고작 하는 일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 소위 일본군 성노예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세워 놓고 한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조건적 반일정서를 주입하는 이른바 ‘수요집회’를 25년 동안 이어온 것이 자랑일 뿐이다.

그러나 2020년 5월 7일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이 단체는 현재 기부금 횡령 등의 범죄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그 동안의 활동이 위안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체를 이끈 윤미향 개인의 출세를 위한 것 아니었냐는 비난마저 듣고 있다. 윤미향이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당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다는 이 단체는 심지어 ‘사드배치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과 같이 안보와 직결된 문제에도 개입해 북한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종북단체’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정대협의 ‘종북반일’(從北反日) 활동에 관한 정보는 한국 ‘미디어워치’ 기사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 http://mediawatch.kr/news/review_list_all.html?rvw_no=91

해당 강의에서 필자는 정대협에 대해 ‘한일관계를 파탄내서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는 종북從北단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근거한 소송 때문에 필자는 정의기억연대가 만든 녹취속기록을 법원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파일 마지막에 첨부한 속기록 표지 이미지 참조). 다음은 이렇게 얻은 강의 녹취속기록 가운데 여학생A와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여학생과의 질의응답 전 재수록

해당 강의에서 필자는 정대협에 대해 ‘한일관계를 파탄내서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는 종북從北단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근거한 소송 때문에 필자는 정의기억연대가 만든 녹취속기록을 법원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파일 마지막에 첨부한 속기록 표지 이미지 참조). 다음은 이렇게 얻은 강의 녹취속기록 가운데 여학생A와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__교수\) 오늘 할 얘기는 대충 다 했는데 뭐 질문이나 토론할게 있어요? 오늘 한 얘기는 여러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처음 들어보는 것이죠? 처음 들어 봤을 거야\.
여학생A) 교수님께서 아까 위안부 관련 말씀을 하시다가 ‘중간에 끝까지 말씀 안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면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분들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갔다고 교수님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강제로 연행해 가지 않았다고...
교수) 지금 매춘산업이 있잖아요. 현재 매춘업이 엄청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잘 모르죠?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지만 강남에 가면 엄청 많아요. 마사지 뭐 어쩌고저쩌고 엄청 많아요 지금. 거기에 여성들이 다 일하고 있잖아요. 그 여성들은 자기가 갔어요? 부모가 팔았어요? 어떻게 해서 간 거예요?
여학생A) 그렇다면 지금 있는 매춘부랑 예전에 위안부를 지금 동급으로 본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이해를...
교수) 그거랑 비슷한거죠
여학생A)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수) 그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서 매춘에 들어가게 돼요. 살기가 어려워서. 지금 현재 매춘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왜 매춘을 했냐? 살기 어려워서, 집이 어렵고 본인이 돈을 못 벌고 그러니까 이제 그 매춘으로. 그러고 그러면 가만히 있냐하면 그게 아니고 ‘여기 와서 일하면 조금만 일해도 월급 많이 받을 수 있어 와서 일해’ 이런 유혹이 있고 해서 들어가서 일하게 되잖아요.
여학생A) 그렇지만...
교수) 지금 그렇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죠? 지금도 안그래요?
여학생A) 지금은 그렇지만...
교수) 지금은 그런데 과거에는 ‘안 그랬다’라고 얘기하려고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옛날에도 그랬다고.
여학생A) 그렇다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걸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예전에 일제 치하에서 위안부로 일했던 모든 여성들이 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매춘 여성으로서 직접 가서...
교수) 지금 일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이에요? 자의반 타의반이죠. 지금도 자의반 타의반이에요.
여학생A) 제가 알기로는...
교수) 생활이 어려워서 그렇지 내가 원해서가 아니에요.
여학생A) 교수님이 이 분야에 대해서 광장히 몇 십 년 동안 연구를 많이 하셨고...
교수) 아닙니다. 위안부 연구한 적은 없어요. 이영훈 책만 읽었어요.
여학생A) 이영훈 책만 읽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교수) 이영훈 책 반대편 책도 읽었어요. 내가 위안부를 직접 연구한 적 없어요.
여학생A)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위안부였던 할머니들께서 증언하신 것들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교육도 시켜주고 이렇게 가면 좋은 일자리로, 위안부는 당연히 아니었겠죠. 매춘산업은 당연히 아니었겠고. 좋은 일자리가 있고, 좋은 교육 기회가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알고 보니 그러한 위안부 캠프였다...
교수) 지금도 매춘에 들어가는 과정이 딱 그래요. 지금도 '여기 와서 일하면 절대 몸 파는 게 아니다' '매너 좋은 손님한테 술만 팔면 된다' ‘그런 거 한 시간에 얼마한다.’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옛날에만 그런 게 아니고.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지금도 ‘처음부터 하루에 손님을 10번씩 받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 안 해요. ‘너 와서 매너 좋은 손님들이 점잖게 술 먹고 가는 데니까 술이나 따르고 안주라도 집어주고 하면 된다.’ 이렇게 시작해요.
여학생A) 그러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도 그렇고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교수님께서 지금 가장 문제시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과도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반일종족주의라는 걸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왜, 이렇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냐 하면 그 네 가지 이유 때문인데 그 중 네 번째가 위안부 문제가 과장되었기 때문이...
교수) 아니 네 가지 이유가 아니고 아까 내가 표로 보여줬던 그 이유죠.
여학생A)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인가요 그럼?
교수) 이영훈은 네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애기를 하는 거고. 그 ‘거짓말이 먹히는 이유를 나는 알겠다’는 거예요. 이영훈은 ‘우리 역사가 일제시대에 관해 네 가지 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잖아요. ‘그 네 가지가 쌀, 토지, 여자, 노동자 이 네 가지를 거짓말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영훈은, 그죠? 나는 ‘그게 거짓말인데 사람들이 왜 진짜로 믿느냐’ 하면 우리나라 식민지 경험이라는 게 다른 나라 식민지 경험과 비교했더니 너무나 최악의 조건이 결합해서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식민지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일본을 미워할 수만 있으면 사실이건 아니건 받아들이는 심성이 생겼다.
여학생A) 그렇다면 이영훈이 말하는 네 가지 거짓말. 네 가지 사안에 대해 이영훈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잖아요. 그러면 그에 대해 교수님도 동의를 하신다는 말씀...
교수) 아니 동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걸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는 이유를 내가 이해한다는 거예요. ‘잘 한다’가 아니라. 못 알아들어요? ... 아니 가만히 있어봐. 마무리를 좀 합시다. 이영훈은 네 가지 ‘우리가 일제시대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게 네 가지가 있다’라고 얘기 하는 거고, 그죠? 그건 알겠죠? 이영훈은, 그걸 내가 조사를 해 봤더니 그게 전부 거짓말이고 ‘이러이러한 게 맞는 거다.’ 나는, 왜 사람들이 ‘이영훈의 말을 안 믿느냐. 왜 일제가 수탈했다고 믿느냐?’ 하는 배경은 식민지 경험이 우리가 워낙 다른 나라 식민지랑 비교했더니 독특하고 최악의 조건이 결합이 되어서 식민 모국을 미워할 수 있는 조건의 식민 지배를 받아서 일본을 욕하는 것을 환영하는 멘탈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학생A) 그렇다면 교수님은 이영훈이 말하는 거랑 교수님의 의견은 다른 겁니까?
교수) 아니 나는 이영훈이 옳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서 정서적으로 그 멘탈을 빨리 벗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왜, 거짓말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스스로 거짓을 확대재생산해서 자꾸 여러가지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다만 ‘정서적으로 그런 느낌이 있는 게 좋은 거냐, 나쁜 거냐?’라고 물어보면 난 ‘나쁘다’고 대답해요. 정서를 빨리 바꿔야 되는데 그냥 ‘미운 놈은 미운 짓하니까 계속 미워하려고 미운 놈이 하지도 않은 것을 미운 놈이 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게 문제다’라는 거지.__

수업에서 이루어진 질문과 답변에서 연세대학교가 징계의 대상으로 삼은 부분은 바로 필자가 답변과정에서 한 ‘궁금하면 한 번 해볼래요?’라는 발언이다. ‘매춘을 해보라’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징계를 했다는 게 학교의 이유다. 그러나 이 발언이 등장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이 발언은 절대 ‘매춘을 해보라’는 발언이 아니다. ‘조사·연구를 해보라’는 발언일 뿐이다. 이 발언 바로 앞에서 여학생A가 교수에게 위안부 ‘연구’를 직접 했느냐는 질문을 한 사실을 맥락으로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앞에서 인용한 질문답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여학생A의 질문에 이어 등장한 여학생B의 질문에 대해서도 필자는 ‘강남에 한 번 가보세요 ...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매춘을 연구하는 방법에 관한 답변도 제시했다. 따라서 비록 ‘연구’나 ‘조사’라는 단어를 생략했지만 질문과 답변의 맥락상 이 발언은 ‘연구’나 ‘조사’를 해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음이 명백하다.

더구나 수업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녹음파일 및 녹취록 어디에도 이 발언 이후 수업을 마칠 때까지 이른바 ‘언어 성희롱’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강의는 위안부 문제를 두고 교수와 학생 간에 팽팽하지만 진지한 논의를 이어갔을 뿐이다.

‘만들어진 사건'

그러나 연세대는 이 문제를 놓고 2020년 5월 5일 ‘정직 1개월’이라는 ‘중징계’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결국 연세대 징계위원회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될 수 있는 원로 교수의 강의에 대한 징계라는 대학 내의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증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가공된 허위사실을 토대로 확정한 것이다.

학교의 판단에 불복한 필자는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민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법원이 내려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당분간 필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위안부에 관한 토론을 하다가 ‘성희롱을 한 교수’라는 불명예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녹음한 강의 내용을 외부 언론에 유출한 성명미상(姓名未詳)의 학생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된 사건이다. 본질은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토론에 재갈을 물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만들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순한 언어 성희롱 사건같이 포장됐다. 연세대의 징계 결정은 이렇게 수면 하에 숨어 있는 이 사건의 실체는 물론 이 사건 강의가 사회학 전공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토론식 강의였다는 기본적 사실조차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외부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편승해 비겁하고 편리한 면피성 판단을 했다.

반일종족주의라는 마약

한국와 일본 두 나라에서 일본군 위안부 연구에 신기원을 마련한 두 권의 책 『반일종족주의』 (2019 미래사) 및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2020 미래사) 출판을 주도한 이영훈 교수는 1937년 중일전쟁의 시작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식민지 한국에서 운영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존재한 한국 역사의 ‘또 다른 위안부 제도’들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기생제(妓生制), 1916년부터 식민지 한국에서 시행된 공창제, 1945년 해방 이후 존재해 온 미국군 위안부제 등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제’ 역시 공창제도의 하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영훈 교수는 공창제는 모두 ‘국가, 남성, 가부장, 매춘업자’들이 암묵적으로 협력해 최하층의 가난한 여성을 성적으로 약취한 부도덕한 일이라고 고발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연히 등장해야 할 질문은 그 많은 공창제의 희생양들 중 왜 우리 국민은 유독 ‘일본군 위안부’에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다. 다시 말 해 ‘일본군 위안부’의 ‘특권화’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일인가?

물론 이영훈 교수의 답은 ‘반일 종족주의’다. 일본군을 대상으로 하는 위안부가 아닌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위안부는 ‘우리 안’의 위선과 모순을 동시에 인정하면서 이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주지만, 일본이 개입된 위안부 문제는 ‘우리 밖’의 적(敵)인 일본을 비난하기만 하면 ‘우리 안’의 문제를 손쉽게 잊게 해준다. 그래서 ‘반일 종족주의’는 ‘우리 안’의 위선과 모순을 덮어주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선이라는 국가를 지배하던 왕과 양반의 위선(혹은 대한민국 지배집단의 위선),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남성 가부장의 위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여성의 가난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매춘업자의 부도덕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아도, ‘반일 종족주의’는 일본이라는 적을 비난하면서 그 모든 우리 안의 모순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마약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한 발짝도 업그레이드 될 수 없다고 개탄한다.

사회에서 말살

이러한 분석과 함께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제’에 관한 3가지 통념의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는, 조선인 위안부의 숫자에 대한 통념이다. 현재 여성가족부 홈페이지는 그 숫자를 무려 20만 명이라고 추산하지만,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종합하면 약 3천 명에서 4천 명 정도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정리한다.

둘째는, 민간 여성을 공권력이 ‘강제연행 내지 납치’했다는 통념이다. 이 통념이 확산되는 데는 다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가 1983년 일본에서 출판한 책 『나의 전쟁범죄』 가 허구의 강제연행설을 퍼뜨리며 한국에 넘어왔고, 또 다른 하나는 민간의 취업사기에 노출된 ‘위안부’와 일본 국가가 여성을 군수공장(軍需工場)으로 동원한 ‘정신대’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를 국가의 ‘강제연행’ 피해자가 아니라 민간 매춘업자의 ‘취업사기’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는,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통념이다. 노예란 노동력을 사고파는 노동시장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다. 쉽게 말해 돈을 내지 않고도 성노동을 시킬 수 있을 때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전차금(前借金 마이낑)을 갚고 자유를 얻어 조선으로 돌아 온 위안부가 다수였음을 근거로 이영훈 교수는 이 통념도 허구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연세대 강의에서 바로 이와 같은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를 설명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괘씸죄에 걸려 엉뚱하게도 성희롱 문제를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필자는 학생들과의 질문답변 끝에 강의의 막바지에서 만약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여러분이 갖고 있다면, 결코 비난의 대상을 과거의 일본에만 가두지 말고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취업사기와 매춘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같은 강도의 비난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왜 우리 안의 현재 모순에는 눈감고, 우리 밖의 과거 모순에는 그렇게 흥분하냐고 되물었다.

수업의 논란은 자연스럽게 일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위안부 ‘장사’를 하는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학생들 대부분은 정의기억연대 편이었다. 급기야는 허락 없이 수업을 녹음한 파일이 외부 언론에 유출되더니,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에 기반한 강의를 ‘토착왜구’(土着倭寇) 수준의 ‘역사왜곡’이라고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는 교수의 역사관 비난에 더해 운동권 학생회를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된 성희롱 문제로 이어졌다. 학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하는 대학에서 ‘반일 종족주의’에 반하는 강의를 한 교수를 골탕 먹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성희롱’으로 문제를 끌고 가는 전략이다.

학생들은 엉뚱하게도 ‘궁금하면 (조사를) 해보라’는 수업에서의 발언을 ‘(매춘을) 해보라’는 발언으로 몰아 징계를 요구했고, 학교 당국은 결국 이를 수용했다.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비합리적 정서를 타파하고 ‘진리와 자유’를 탐구해야 할 대학이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私學)이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연세대학이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반일종족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이었다. 33년을 봉직한 교수가 겪고 있는 반일종족주의의 구체적 모습이다. (끝)

류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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